– 프로필 역사 경력
생년월일
1968년 4월 10일 (만 54세)
체형 혈액형
175cm, B타입
데뷔년도
1985년 KBS 드라마 ‘해돋이 언덕’
훈련
충암고등학교(준공)
명지대학교(경영학/학사)
가족 관계
배우자 박지영 (1971년생, 1998년 결혼 ~ 현재)
셋째 아들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마이웨이’ 이광기 부부가 시련을 이겨냈다.
– 2018. 10. 19
‘마이웨이’ 이광기 부부가 시련을 이겨내고 더욱 단단해졌다.
18일 방송된 TV CHOSUN ‘인생다큐-마이웨이’에서는 이광기와 박지영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1985년 데뷔한 이광기는 KBS 드라마 ‘태조 왕건’, ‘왕의 여왕’, 장희빈, 정도전 등에서 열연을 펼쳤다. 지난해 ‘꽃’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열어 사진작가로 데뷔했다. 이광기 스튜디오 오픈 당일 스튜디오는 배우 김병옥, 견미리, 송기윤, 김명수, 화자 이숙영 등 지인들로 붐볐다.



그는 스튜디오에 있는 라디오를 만지며 “준서가 태어났을 때 아는 아티스트가 준 것이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톤이 바뀝니다. 그것은 내 동생이 천국에서 나를 축하한다는 의미입니다. 가끔 음악도 나오고, 가사도 나오고, 신나는 노래도 나오고, 랜덤박스도 나오고. 똑같은 것. 2012년 1월 14일, 12일에 우리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제가 힘들 때(첫 아들을 잃었을 때) 이 친구가 제게 십자가를 주었습니다. 나는 많이 울었다. 십자가 위에 빈 의자가 있는데, 그것이 내가 앉아야 할 의지입니다. 많이 울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광기가 과거 사진을 공개했다. 한 장의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는 “석규가 어렸을 때, 3~4살 때”라고 언급했고, 2009년 7세의 나이로 덩치 큰 아들 석규가 신종플루로 세상을 떠났다.
이광기는 “그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종플루를 두려워하던 때였습니다. 우리 아이가 돼지독감 때문에 우리 곁을 떠나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아요. 뉴스는 심지어 사회부와 해외에서 나왔습니다. 그때 나는 가족과 아이와 세상에 화가 났다. 나는 공인이 되는 것이 싫었다. “공인이었더라면 아무도 몰랐을 텐데, 가족들에게는 조용히 안타까움이 되었을 텐데. 부담감으로. 나는 어떻게 살지 정했다.”
이어 “아내와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갑자기 우리 아이를 보내고 나서. 전날까지 멀쩡하던 아이가 병원에 가보니 신종플루라고 했다. 치료를 하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응급실에 가보니 보이는 게 있었다. 그는 내 앞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내 앞에서 걸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때 나는 병원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사람처럼 이광기, 보는 사람마다 자꾸 아이 이름을 불러줬다”고 눈물을 닦았다.



이어 “너무 답답해서 베란다로 나갔다. 차가운 11월의 바람이 나의 불과 열과 분노를 식혀주었다. 내 몸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발끝으로 서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매달려서 눈물을 흘렸어 드디어 아이야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너무 아름답게 빛나고 있어 별에게 말을 걸고 싶었어 ‘예쁜 별은 내 아이들이겠지 다 아이들이 돼 천사지만 우리 아이들도 천사가 되었나 봅니다. 그 순간 나는 감사했다. 알겠어요. 우리 아이는 7 살이었습니다. 내 기억에 가장 아름다운 사진만 남긴 마음이다.
이광기는 과거 함께 찍은 프로필 사진을 보며 “석규 형 진짜 잘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등록증에 지우지 못했다. 안했는데 학교출석기록이 집으로 날아갔어요. 아내와 나는 훨씬 더 고통스럽게 울었습니다. 아내가 못 간다고 해서 혼자 동사무소에 갔다. 계단을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삭제하기 전에 가족과 함께 있던 사본 모음을 제거했습니다. 힘들게 지웠습니다. 그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울었다”고 말했다.
이광기는 봉사활동으로 스스로를 치유했다. 2010년에는 지진이 발생한 아이티로 달려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도왔다. 그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지원합니다. 그는 그림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보여주며 “석규가 그린 내 그림이다. 받는 순간 부모를 잃은 아이티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려고 많이 울었습니다. 전액을 아이티에 학교를 짓는 데 기부했습니다. 아들 덕분에 한쪽만 보곤 했는데 석규 형이 나보고 못 보던 곳을 보게 해줬다”고 말했다.
이날 이광기는 아내 박지영, 아들 준서와 함께 베트남 남부 휴양도시 나트랑으로 여행을 떠났다. 많은 기억들이 깨어나고 가족의 유대가 깊어졌다. 이광기는 “시험은 내 운명인 것 같다. 저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하늘이 저를 얼마나 쓰실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방향과 목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